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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조경의 잔혹함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자연의 전쟁.

by 도움이 되는 자기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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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아주 자주(매일) 다니지 않으면 못 볼지도 모른다...

 

가끔 공원에 나갈 뿐이라면..

정원의 아름답고,

시원하게,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수들의 아픔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20240806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소나무

 

나는,

점심때마다 할 일이 있어서, 사명감에 매번 나오다 보니..

조경작업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소나무는 열심히 키워낸 끝 가지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간다.

내 허벅지보다 굵거나 몸통만한 아름드리 나무줄기도 잘려나간다.

저건.. 이발이나 미용소에서 자르는 머리카락 같은 게 아니라.. 나무의 몸이 아닌가?!

나무는 얼마나 많이 아플까?

 

20240806

 

오렌지색의 화사한 원추리가 아주 무성하게 군집을 이루어, 아름답게 피어나던 화단은..

잔디와 잡초들을 베어내면서..

모조리 도매급으로 ...베어 넘겨져 민둥한 땅바닥만 남았다.

 

20240806
20240806

 

가득했던 원추리 동네는..

줄기와 꽃이 시체처럼 널부러졌다.


 

하루 이틀 지나서 이 모든 사건이 정리되고 나서,

.. 오랜만에 이 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깨끗하고, 청결하고.. 정돈이 잘 된, 멋진 공원이 보일 것이다.

그 어디에도 아픔과 비극은 남아있지 않을 테고..

깨끗한 공원만이 남는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경건해지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만족스런 산책을 할 것이다.

..

마찬가지로 인간이 사는 세상 안에 꾸며진 여러 공원과 정원들,..

콘크리트 아파트 대단지 속, 단정한 정원수가 가득한 멋진 자연경관은..

이런 잔혹함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잡초와 초목들의 잔혹한 성장과 침략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일방적인 폭력으로만 비춰질 듯하다.

 

정확히는 인간들이.. 무한한 (생명력의) 자연과.. 돈과 자원, 문명을 소모하며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상호 간의 전장(戰場, battlefield)이다.

조경하는 분들의 노고勞苦가 없인..

우린 엄청난 비용을 치루고 식재한 멋지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잡초에 파묻혀 죽어가는 꼴을 봐야 할 것이다.

나무들도 가지들이 제 멋대로 자라다가.. 병에 걸리거나 스스로 말라죽어 버릴 것이다.

잡초들이 보도블록 위를 넘쳐흘러서, 결국엔 사람들이 길로 다니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진 인류 문명(삶)은..

일면으론 (자연에겐) 가혹해 보이지만, 

그만큼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우리를, 우리가 선택한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어느 쪽도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공원을 거닐 때조차도.. 매 순간에..)..

그 모두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고, 경외하고, 엄숙해질 수밖에..

 

모두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