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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빨래를 개면서 생각한 것들.

by 도움이 되는 자기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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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피곤해서, 익일 아침(지금)으로 빨래개기를 미뤘다.

물론, 이번에도 요령껏 양말 하나는 덜어내고.. 차근차근 빨래를 갠다.

 

아침이라 머리가 맑아서.. 얻는 게 있었다.

20240723

 

거실은 블라인드를 쳐두어서 상당히 어둡다.

빨래를 개려고 블라인드 블레이드를 열어 밝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침 햇빛을 조명 삼아서 빨래를 접기 시작했다.

 

20240723

 

한참 빨래를 개고 있으니, 찹찹하던 거실에 열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덥다..

..

아....!.

태양에서 빛(밝음)만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빛과 열기는 함께 오는 것! 그것이 태양의 본래 속성이다.

빛光을 가지면, 어쩔 수 없이 열熱도 감내해야 만 하는구나! 하는...

뭇마땅하단 생각도 들면서.. 이게 세상의 본질이란 깨달음이 찾아든다. 

(어렵게 결론 내리고, 어렵게 썼지만.. 결국 세상만사, 만물엔 장-단점이 있다는 말일뿐..)

 


이런 생각은 곧 다른 상황, 맥락으로 이어졌다.

여긴 지금 해가 뜨지만,

지금 중부지방은 집중호우로 물난리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남부는 가끔 흐리고 날이 너무 뜨거워서.. 세상이 바짝바짝 타고, 마르는 느낌이다.

한 쪽은 홍수로 물이 넘쳐나고, 한 쪽은 가뭄이 들고..

(비대칭성, 불균형한 세상)

..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미국이 다큐멘터리 중에, 부자동네의 쓰레기통에서 온전한 식품, 식재료들을 구해다가 먹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있었다. 

버려지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매일 유니세프나 국제 구호단체의 광고에 나오는, 빈곤과 기아의 열악한 환경의 나라들,..

한 쪽은 그냥 남아서 버리거나 비만이고, 한 쪽은 굶주리고..

(불평등?)

..

외국의 경우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 주변에도 흥청망청 쓰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는 여전히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

..


이러한 모든, 불합리해 보이는 현상들은..

단지, 사회와 문명의 문제, 인간의 문제로 보면.. '악惡'으로 보이지만..

물난리와 가뭄,  적도부근과 북국의 경우를 보면.. 이런 배분적인 비대칭성, 불균일함은.. 결코 '악惡'이 아니라.. 세계의 본질적인 모습(自然) 임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이래야만 하는가?

(물론 신이나 하느님께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생각하자면..)

 

바른 것, 좋은 것을 갈구하고 쫓아다니고,

그것만이 이 사회, 세상에 있었으면 하고 천국과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불의가 있기에 정의가 살아나고..

나쁜 것이 있기에 좋은 것에 의미가 생겨난다..

가난하고 굶주리기 때문에,  일을 하고 먹을 것을 찾으려고 든다..

병과 죽음이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서 위생을 챙기고, 좋은 것을 먹고 운동을 하려 든다.

즉..

이런 단차段差가 있기에.. 흐름이 생겨난다.

**단차段差 : 방과 거실 사이, 층계 따위에서 볼 수 있는 높낮이의 차.

'높고 낮음의 분별'이 있기에.. 움직임, 활동, 변화가 일어난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제8장 -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 수선이만물이부쟁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해 준다

故幾於道고기어도. 그러므로 물은 도에 거의 가깝다.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사는 곳으로는 땅 위가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은 것이 좋고, 벗은 어진 사람이 좋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고,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 정치나 법률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못됨이 없다

 

 

존재는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살듯.. 죽음이란 명암, 테두리를 통해서 존재가 의미를 갖는다.

마치 흰 도화지에서 흰색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얼룩, 오점, 지저분한) 검은 펜으로 선을 그으면 무언가가 있는 듯 보이는 것과 같다.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적인, 역설적인.. 불합리함이.. '살아있다'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아.. 정말 불합리하다.

..

그럼 이런 불합리함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있나?

마치 늑대에게 왜 늑대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늑대에게 늑대(빨간망토 소녀와 할머니를 잡아먹은) 임을 따지기 보단..

늑대를 길들여서 양치기 개로 개조하거나, 동물원에 집어넣어야 한다. (다시는 빨간 망또 소녀와 할머니를 잡아먹지 못하게..).. 

인류가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킨 이유는.. 세계(의 본질)를 변화시키기 보단, 세계를 인간에게 이롭게..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투덜거리지 말고, 뭘 할수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자.

 

 

빨래를 개면서 문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