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잠깐 정원을 돌아보다가..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평소.. 모과나무는.. 그냥 병이 잘 든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무던하게 생각했는데..
아주 징그럽게.. 촉수 같은 것들이 돋아나있다..
잎만이 아니라.. 가지에서도..
찾아보니..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tjunjun&logNo=221441012430&proxyReferer=
녹병균(綠病菌, 영어: rust)綠 {푸를 록(녹)} 菌 {버섯 균} 또는 수병균(銹病菌)은 녹병균목(영어: Uredinales)에 속하는 녹병을 일으키는 담자균류이다. rust로 `녹' 또는 `녹슬다'는 의미다. 한자로 綠病. 병명은 쇠가 녹이 슨 모습으로부터 유래됐다. 전세계에 150 속 6,000여 종이 분포하며 살아있는 식물에만 기생하는 곰팡이다. Rusts are fungal plant pathogens of the order Pucciniales (previously known as Uredinales) causing plant fungal diseases. [출처: 녹병균- 위키백과 등]
내가 좀더 .. 선입견이나 무관심을 내려놓고..
평소에 관심과 주의를 가졌다면..
..
나무와 곰팡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초기에 눈치채고.. 개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보지 못한다고.. 없는 게 아니다.
거꾸로..흥미와 관심을 갖고 의식적으로 주의를 가진다면..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다.
..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나..
너무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보지 못하는 거시 세계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형이상학적인 영역의 것들..
..
일단.. 가까운..
인간 관계 속의 미묘한 흐름.. '썸 타기' 같은 거나..'왕따'나 '따돌림'같은 것들 말고도..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상대방이 말은 못 하지만 싫어하는 티를 낼 때..
..
예를 들어..
왠지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이 거북스럽고, 회피하는 듯할 때.. '싸해지는 분위기'.. 일명..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상황'에서..
그런 미묘한 변화나 분위기에서..'내가 지금 하는 말이나 행동이 지금 상황에 맞지 않거나, 타인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친구나 와이프가 옆구릴 툭툭 치는 걸.. 알아차리는 것까지 포함해서..)
눈치가 필요하다.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참고로.. 일본어로는 ドン引き(돈비키)가 갑분싸와 뜻이 유사하다. 민중서림 사전의 풀이는 "누군가의 발언이나 행동에 의해 분위기가 갑자기 깨지거나 썰렁해지는 것; 또, 그 상태[사람]."이다. 영어에는 흥을 깨는 사람, 분위기 깨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 킬조이(killjoy)가 있다. 명사형이긴 하지만 갑분싸와는 용법이 비슷하다. [출처: 갑분싸-나무위키]
..
특히 입만 열면 갑분싸가 된다면..
좀더 생각을 해보고.. 어디까지 말을 할지 염두에 두고 입을 열거나..
그냥.. 경청을 더 하도록 하자.
이웃님, 레이샤인 님의 블로그에.. 스토아철학의 프로소케(prosoche)라는 개념이 소개되어 있다.
구글 검색해도.. 프로소케를 언급한 인터넷정보는.. 레이샤인 님이 유일했다.
https://rayshines.tistory.com/776
..
좀더 찾아보면.. 외국에선 널리 알려진 듯하다.
https://academic.oup.com/book/8948/chapter-abstract/155266691?redirectedFrom=fulltext
Abstract
As the very fabric of life continues to fray and tear, the need for us to be able to apprehend the whole, to see all things as existing in intimate relationship with one another, has never been more necessary. The ancient Christian contemplative tradition, with its deep commitment to the simple practice of prosoche or attention, offers one important resource for helping us recover a more encompassing vision of the whole. One also finds a striking commitment to the practice of attention in modern and contemporary traditions of reflection on the natural world. And while the precise meaning of what it is to pay attention varies tremendously among and between these traditions, there are compelling reasons for considering them together. Perhaps the most significant reason is their shared sense of what it means to cultivate the art of attention as part of a serious, disciplined practice. This chapter argues that the recovery of such practice can help us heal some of the imaginative rifts that have prevented us from seeing and living in the world with a sense of its integrity, beauty, and mystery.
삶의 구조 자체가 계속해서 닳고 찢어짐에 따라, 전체를 이해하고 모든 것이 서로 친밀한 관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습니다. 프로소슈(prosoche) 또는 주의(attention)라는 단순한 실천에 깊은 헌신을 쏟는 고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은 우리가 전체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비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원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또한 자연 세계에 대한 성찰의 현대적이고 현대적인 전통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실천에 대한 놀라운 헌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이러한 전통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함께 고려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지하고 규율 있는 실천의 일환으로 관심의 기술을 배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실천의 회복이 우리가 세상의 온전함, 아름다움, 신비감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상상의 균열 중 일부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https://www.sokratiko.com/words/prosoche/
PROSOCHE is ‘attention’. This ancient Greek term designates ‘diligence’, ‘soberness’, ‘mindfulness’. It is the fundamental Stoic attitude of a continuous vigilance, a persistent attentiveness and a self-consciousness which never stops. In other words, it refers to a constant tension of the spirit. However, this kind of positive alertness is in no way anxiety or disquietude. <Prosoche> is ‘attention’, but in a condition of serenity and composure, never in a state of fear and stress.
PROSOCHE는 '관심'입니다. 이 고대 그리스어 용어는 '부지런함', '철저함', '마음챙김'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지속적인 주의, 결코 멈추지 않는 자의식이라는 근본적인 스토아적 태도입니다. 즉, 영의 지속적인 긴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긍정적인 경계는 결코 불안이나 불안이 아닙니다. <프로소체>는 '관심'이지만, 결코 두려움과 스트레스의 상태가 아닌 평온함과 평정의 상태이다.
불교의 팔정도의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또는.. 사띠(sati)와 사마디(samadhi)처럼.... 그 개념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미 스토아철학에서도 언급되어 서양에서도 널리 알려진 개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 주변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런 까닭에...
전체를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사소한 것들에.. 흥미(inter-est)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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