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지하창고에서 공부하고 있던 곰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가 문을 세차게 흔들고 두드린다고..
..
급히 내려가 봤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인기척은 없다.
혹시나 하고 고라니가 내려왔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 또한 알 길이 없다.

겁을 먹은 곰지와 함께 올라왔는데..
그녀의 걱정만큼이나 나 또한 불길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 시간에 취객일까? 야생 동물일까? 새벽에 배송하는 택배도 있는가? 아니면 정말 끔찍한 무엇일까?
..
문득 떠올린 것은.. CCTV였다. 그랬다..
방범카메라가 있잖아!
녹화가 제대로 됐을까?
어릴 때 본 공포영화의 장면처럼.. 저 화면 속에서 뭔가 불길한 흰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써 본 적이 드물어서.. 더듬더듬거리면서 재생 기능을 찾아냈다.
빨리 보기를 눌렀더니, 내가 문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재생된다.
..
새벽 한 시 1-2분 전에 곰지가 지하창고로 들어가고..
내가 내려간 것은 그로부터 1시간 26분..
30초 넘기기 기능도 있고, 배속 기능도 있는데.. 버튼을 잘못 누르고, 재부팅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전부를 2-3번 확인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범인은.. 바로..
.
.
2-3분간 집중적으로 몰아친 비바람이었다.
..
비가 창과 문을 때리고, 바람이 문을 흔들었던 거다. 그것도 잠시 동안만 그랬고.
오해할 만도 했다.
곰지에게 설명해 주고,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워서 곰곰힣 생각했다.
카메라영상을 확인하기 전에..
내 맘속에서 떠올랐던 그 많은 망상들과.. 여러 감정들..
만약 녹화영상이라는 객관적인 정보가 없었다면.. 나는 여러 이러이러한 가설들, 또는 의혹이나 상상의 나래를 마구 마구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글의 내용도 판이하게 달랐으리라..
진실을 알고 나니.. 그냥 그 모든 것이 망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망상이란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내가 상상해 낸 범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그리고 나름대로 그럴싸한 가능성과 근거로 포장되었는지..
스스로가 엉터리인.. 거짓인.. 그 망상이란 생각에.. 납득하려고 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자정 1분 전에 다녀갔던 택배 차량..
택배 기사님도 내일의 일을 위해서 새벽까지 일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침 일찍인 새벽이 아니라면..
산아래 인적도 드문 이곳에 갑자기 취객이 있을 리 만무하고..
범죄자나 정신병자가 갑자기 나타날 수 도 없을 것이다.
쫄보인 고라니가 파리도 아닌데.. 불빛이 있는 문을 들이받을 일도 없고..
하지만..
불안함, 두려움이란 감정은.. 상식을 마비시킨다.
뭐라도 떠올려서 생각을 만들고 거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생각이란.. 생각의 도피처가 아닌가?
지나친 생각보다는..
일단 몸을 움직여서 눈으로 확인하자.
질문하고 대화해서 확인하자.
..
주관적이고, 단지 그럴듯한 생각은 망상이 되기 쉽기에 경계해야 한다.
상식이 필요하고 상식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겠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한다. 망상이 생겨난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범죄자를 위한 광복. (12) | 2025.08.15 |
|---|---|
| 너무나 사랑한 것이 죄가 될수 있을까? (13) | 2025.08.14 |
| 한계돌파의 이로운 점 (17) | 2025.08.12 |
| 비온 뒤 맑음 (16) | 2025.08.11 |
| 빌런.. (15) | 2025.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