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뒷산에 올랐다.
시간이 빠듯해서 십여 분만 걷기로 하고..
(보통은 타이머를 맞추고 걷다가 알람이 울리면 돌아선다.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신조로... )..
오랜만에 오른 산은..
이미 초목이 우거져서.. 안 그래도 조금 흐린 날씨로...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더욱 어둡고 음산해 보인다.
**음산-하다, 陰散- 형용사 1. 흐리고 으스스하다. "음산한 초겨울 날씨"2.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음산한 분위기" [출처: 옥스퍼드사전]
길 가운데 있던.. 또는..
사람들이 다니며 길을 넓히는 바람에.. 길 가운데로 나앉게 된 나무는.. 어느새 죽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너무 빽빽하게..
처절할 정도로.. 치열하게 자라나는 저 잡초들은..
오늘따라 유달리 숨이 막힐 듯하다..
게다가.. 몇 개의 뱀딸기 말고는.. 모두 초록일색이다.
어떤 꽃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봄과 초여름엔 그렇게도 많은 (색의) 다양함이 있었는데..
..
이런 변화와 현재의 모습이.. 오늘날, 인간 세상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
오히려 문명의 고도화되고 첨예화(더 편리)하기 전엔..
인간은.. 인간들의 힘에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각자의 기량과 재주를.. 뽐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다양한 꽃들의 색과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돈.. 일색一色이다.
돈이면.. 돈의 금액으로 사람의 노동력..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능력을 가져와 쓴다.
..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소소한 재능은.. 단지.. 경제적인 돈의 가치, 수익 창출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기에 묻어두고 만다.(예를 들어.. DIY를 잘하거나, 좋아해도.. 그 시간에.. 돈을 벌어서..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기는 편이 더 경제적이다)
또한..
가진 자들은 더 많이 햇볕을 받고, 더 커져서 다른 초목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와 같이..
먼저 시작하고.. 먼저 자리 잡고, 먼저 기회를 가진 이들은.. 너무 지나치게 성장한다.
뒤늦게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발디딜 곳이 없게 된다.
5월 말이라서 비밀의 화원처럼.. 한시적으로 열리는 철문을 통한.. 지름길로 내려가.. 다시 당도한 공원에는..
비록.. 그전에 있던 잡초같이 무성했던 보리를 모조리 베어내어.. 아쉽지만..
..
다시 생각해 보면..
저렇게.. 단정하게.. 줄지어 심은., 백합들은..
인위적이긴 해도..
경쟁하지 않고.. 여유롭게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너무도 질서정연히 두 줄로 세워진 모습.. 작위적인.. 어색함이 있지만..
..
잡초와 경쟁하지 않고..
맘껏 자신의 꽃을 피워낼, 저.. 백합의 무리들은 ...
나름은..아주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을까?
..
그들 자신에게도 좋겠지만.. 보는 이들에게도.. 여유와.. 편안함을 준다..
..
공원의 정돈된 정원을 보며..인적드문 산길의...숨막힘을 떠올린다..
인위적인 공원의 모습에서...문명이 발달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산길의 자연적이지만..숨막히는 경쟁에서..
지나친 문명의 발전에 따른 안정, 그로 인한 지나친 방임은..
결국.. 야생과 다름이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런들..
결국.. 계절이 지나.. 가을, 겨울이 오면.. 그 모든 것은 무상히도.. 다 스러지고 말 터인데..
저 인적이 드문 산길이나.. 공원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런 저런.. 주장을 모두 긍정하고 ..방황하고 제자릴 맴돌거나, 퇴보하기 보다는..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안정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결국.. '좋은', '선', '가치'란 것은.. 어떤 의미에선 정해진 형태이다.
좋은 말, 좋은 행동이 있는 것처럼..
요컨대.
아무리 다원성, 다양성, 개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치게.. 주장이 난립하면.. 모두가.. 힘들다.
잡초를 정리하고.. 우거진 가지를 전정작업하듯..
누군가의 소신(철학)으로 정리가 필요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를 중요하게 여긴 것..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주장한 이유를 알것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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