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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The path of insight meditation 1>

by 도움이 되는 자기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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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The path of insight meditation 1>

그리고..

중요한 질문들 ..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직후 길에서 한 남자를 지나쳤는데, 그는 그의 존재의 비범한 광채와 평화로움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멈춰 서서 물었다. “친구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천상의 존재입니까, 아니면 신입니까?”

“아니요.”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당신은 마술사인가요, 마법사인가요?”

부처님은 다시 “아니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은 남자인가요?”

"아니요."

“글쎄, 친구야, 그러면 너는 뭐니?”

부처님은 “나는 깨어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붓다라는 이름은 “깨어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바로 이 경험이 위빠사나, 즉 통찰 명상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그것은 우리 몸, 마음, 생각,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세계를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열어주고, 그들 모두와 관계하고 이해하는 현명하고 자비로운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수행 방법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통찰 명상 수련은 남부 아시아의 테라와다(Theravada) 전통에서 2,500년 동안 전수된 부처님 가르침의 원래 핵심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는 '아시아적' 관행이 아닙니다. 누구나 삶의 진리를 깨닫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실천입니다.

 

 

 

It is said that soon after his enlightenment, the Buddha passed a man on the road who was struck by the extraordinary radiance and peacefulness of his presence. The man stopped and asked, “My friend, what are you? Are you a celestial being or a god?”
“No,” said the Buddha.
“Well, then, are you some kind of magician or wizard?”
Again the Buddha answered, “No.”
“Are you a man?”
“No.”
“Well, my friend, what then are you?”
The Buddha replied, “I am awake.”
The name Buddha means “one who is awake,” and it is this experience that is the very heart and essence of vipassana, or insight meditation. It offers a way of practice that can open us to see clearly our bodies, our hearts, our minds, and the world around us and develop a wise and compassionate way to relate to and understand them all. This practice of insight meditation comes from the original core of the Buddha’s teachings as transmitted for 2,500 years in the Theravada tradition of southern Asia. But it is not an “Asian” practice. It is a practice by which anyone can awaken to the truth of life and become free.

 

올바른 이해
깨달음의 길은 부처님께서 올바른 이해라고 부르신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올바른 이해는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우리 마음에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이며, 이생에서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은 꽤 짧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삶은 지나갑니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여 우리의 삶이 꿈 속에서 사라지도록 놔둘 수도 있고, 아니면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연습을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가질 것인가? 죽음의 순간, 의식적으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한두 가지 질문만 던집니다. 나는 현명하게 사는 법을 배웠는가? 내가 사랑을 잘 한 걸까? 지금 그들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이것이 올바른 이해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그것이 무상하고 찰나라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도 엄청난 고통과 전쟁, 가난, 질병이 만연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심지어 바로 여기 북미에서 끔찍하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안전하고 자비로운 존재를 육성하려면 세상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단순한 정부 교체나 새로운 통화 정책만으로는 인류의 고통과 고난이 완화될 수 없습니다. 가장 깊은 차원에서 전쟁과 기아 같은 문제는 경제와 정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근원은 인간 마음속에 있는 편견과 두려움이며, 그 해결책 역시 인간 마음에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편견에 덜 얽매인 사람들입니다. 더 많은 사랑, 더 관대함, 더 많은 자비, 더 많은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인간 문제의 뿌리는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오해, 두려움, 분리에서 비롯됩니다.

올바른 이해는 우리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다음 내면에서 정말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만지고,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영적 수행의 기초로 활용하라고 요구합니다. 세상과 우리 자신의 상황이 완전히 옳지 않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또 다른 가능성, 즉 더 큰 사랑의 친절과 깊은 직관적 지혜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잠재력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 여정을 위한 영감은 우리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중 일부에게는 이것이 깨어 있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느낌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 중 다른 사람들은 우리 삶에서 고통의 힘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실천에 나섰습니다. 어떤 사람은 발견과 탐구의 실천을 통해 이해를 구하도록 영감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신성과의 연결을 직관적으로 느끼거나 마음을 더 완전히 여는 방법으로 실천하도록 영감을 받습니다. 우리를 영적인 수행으로 이끄는 모든 것은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며 참된 이해로 이끄는 우리 마음의 불꽃이 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카르마의 법칙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필요합니다. 카르마는 티베트의 전생과 같은 난해한 것에 대한 신비로운 생각이 아닙니다. 카르마라는 용어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는 일과 행동 방식이 미래의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 우리는 증오의 분위기 속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 대가로 우리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키우면 그 사랑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것은 단순히 법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입니다.

누군가 위빠사나 스승인 루스 데니슨(Ruth Dennison)에게 카르마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럼요. 카르마는 당신이 아무것도 없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카르마를 이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법칙 내에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자신을 훈련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사랑하고, 더 의식하고, 더 의식하는 등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연습할 수 있습니다. 수련회에서나 운전 중에 또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친절을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 내부와 주변 세상에서 점점 더 많은 친절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바보이자 현명한 수피교 인물 물라 나스루딘(Mullah Nasruddin)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정원에서 화단 주위에 빵가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한 이웃이 와서 물었습니다. “물라, 왜 그러세요?”

Nasruddin은 "아, 호랑이를 쫓아내려고 그러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웃은 “하지만 여기서 수천 리 안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Nasruddin은 "효과적이지 않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영적 수행은 의식이나 기도를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깨닫고 우리의 삶을 그에 맞춰 조정함으로써 작동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깨어남의 잠재력을 우리 자신에게서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따를 수 있는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 자신, 신체, 주변 사람들, 일과의 관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고, 바로 우리의 자유나 고통을 만듭니다.

 
수년에 걸쳐 다양한 문화에 걸쳐 이러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불교 수행의 많은 기술과 시스템이 개발되었지만 각성의 본질은 항상 동일합니다. 즉, 매 순간 우리 경험의 진실을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보고, 알아두세요, 명심하세요. 이 수행은 부처님께서 마음챙김의 네 가지 기초, 즉 몸에 대한 자각, 느낌에 대한 자각, 정신 현상에 대한 자각, 진리에 대한 자각, 경험의 법칙이라고 부르신 체계적인 개발이자 자각의 개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챙김의 배양에 성공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이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단향과 타가라향은 은은한 향기가 나며 약간의 향기를 주지만, 덕행과 잘 단련된 마음의 향기는 신들에게도까지 오른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고대 불교 경전이자 안내서인 정화의 길(The Path of Purification)은 짧은 시에 대한 답으로 쓰여졌습니다.

세상은 매듭으로 얽혀있습니다.

누가 얽힌 것을 풀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명상수련을 시작하는 것은 그 얽힘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풀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주의력을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두려움, 애착, 혐오, 즉 고통에 사로잡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몸과 마음, 정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보는 법을 배움으로써 지혜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