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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인생 팁)(예절)/식食

아침의 영광이 아닌 보릿고개의 구세주..

by 도움이 되는 자기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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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뒤편의 나대지, 잡초가 우거진 곳에 꽃이 피었다.

 

'나팔꽃인가??'

 

20240608 메꽃

찾아보니..

나팔꽃, 아침의 영광(moring glory).. 이 아닌..

메꽃이었다.


 

메꽃(Bindweed, Hairy-false morning glory)의 학명은 Calystegia japonica다. 

메꽃을 고자화(鼓子花)라고도 하는데  거세를 당해서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를 흔히 고자라고 하는데 메꽃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서 고자화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메꽃 속명의 calystegia는 calyx(꽃받침)이라는 뜻과 stege(뚜껑)이라는 뜻의 합성어로 두 개의 포엽이 꽃받침을 싸고 있다는데서 비롯되었다. 들에서 흔히 자라는 식물로서 백색 땅속줄기가 사방으로 길게 뻗으며 군데군데에서 순이 나와 엉킨다. 잎은 어긋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긴 타원형이고 잎의 아랫부분이 귓불모양으로 되어 있다.

꽃은 6∼8월에 연분홍색으로 핀다. 꽃모양이 나팔꽃을 닮아 혼동하기 쉬우나 나팔꽃이 아침에 피는 데 반하여 메꽃은 한낮에 피는 것이 다르다. 또, 나팔꽃은 일 년생인 데 비하여 메꽃은 다년생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땅속줄기는 삶아서 식용하는데, 땅속줄기에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춘궁기 때는 식량의 구실을 해주었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그리고 살찐 뿌리줄기는 달콤한 맛이 있어서 생으로도 먹을 수 있고 찌거나 삶아서 먹기도 하고 쌀과 함께 죽을 끌이거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 덕에 옛날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엔 구황작물로 널리 쓰였다. 

이른 봄날 밭에서 메꽃줄기가 말라있는 주변 땅을 파면 흰색의 기다란 뿌리줄기를 얻을 수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포함한 전초(全草)를 말린 것을 선화(旋花)라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약성은 온(溫)하고 감(甘)하며, 익기(益氣-강장, 피로회복 )·이수(利水-이뇨)·항당뇨(抗糖尿)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신체허손(身體虛損)·소변불리(小便不利)·고혈압·당뇨병 등에 탕 또는 즙을 내어 복용한다. 또, 피로회복제로도 이용된다.

[출처: 메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황작물(救荒作物) 또는 비황작물(備荒作物)은 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이다. 

 

救는 '건질/구원할 구', 뜻을 나타내는 攴(칠 복)과 소리를 나타내는 求(구할 구)가 합쳐진 형성자
갖출 비(備). '갖추다', '준비(準備)하다', '마련하다' 등의 뜻 , 
갑골문상에서 이 글자는 화살통에 화살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습으로 본래는 화살통을 나타내는 상형자로, 화살이 갖추어져 전쟁을 대비한다는 뜻에서 '갖추다'라는 뜻
荒은 '거칠 황'이라는 한자로, '거칠다', '흉년' 등을 뜻
회의자로 풀 한 포기(艹) 물 한 모금(川)조차 없는(亡) 곳이라는 뜻


 

또한, 알고 보니..

<햇볕은 쨍쨍 (The Sun is Shining)>이란.. 아주 친숙한 동요에도 등장하였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해 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호미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를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친숙했던 동요의 가사가..

민족의 가난한 시절과 함께.... 애틋한 가족애를 담고 있었다.

가난했지만.. 사랑이 있던 시절인가?

 

요전에.. 우연히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미국의 경제대공황시절, 뉴딜정책,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Tennessee Valley Authority, TVA)를 설명하는 걸 들었다.

강의하던.. 김봉종 교수가 자신이 미국에서 강의할 때.. 미국 학생들에게...

대공황을 겪은 세대인 노인들에게.. 그 당시에 대한 회상을 청취해 오라고 과제를 냈는데.. 

이외로.. 한결같이.. 미국인들은

벌거벗은세계사 EP.23 ❘ tvN 210810 방송

대공황시기를 '좋았던 그때 그 시절(Good old days)'이라고 회고했다.

사상 최악으로 어렵고 가난한 순간이었지만..

어렵고 가난한 시절.. 가족이 뭉치고 이웃이 하나 되고,.. 함께였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고난이라고..


 

내 어린 시절, 80년대 초만 해도..

두루마리 휴지 조차도 귀해서 신문지를 비벼 쓰거나, 달력을 찢어 썼는데..

(당시 신문 만평에.. 외국인 바이어가 와서 대접하느라, 상위에 (당시 귀했던) 두루마리 휴지를 올렸더니, 미국인들이 당황했단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모든 것이 너무도 풍족한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세계가 쌓아 올린 문명은..

핵미사일이나 전쟁의 업화(業火)에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 우린 다시 저 메꽃을 캐내어 먹어야겠지...


다시.. 메꽃을 먹을 일이 없기를..

인류와 우리 민족이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