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 無 明 )은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밝음이 없음'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인간의 괴로움 또는 근본 번뇌(의 원인)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
무엇을 〈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 · 有緣 · 有縛法經)〉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안식[眼]에는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안식[眼]의 인(因), 안식의 연(緣), 안식을 속박시키는 자[縛]인가? [지금까지 쌓은] 업(業, 즉 염오(染污)한 업)이 안식의 인이고, 업이 안식의 연이며, 업이 안식을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이다.
업(業, 즉 염오(染污)한 업)에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 무엇이 업의 인, 업의 연, 업을 속박시키는 자인가? 갈애[愛, 집착, 애욕]가 업의 인이며, 업의 연이며, 업을 [즉, 안식의 업을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이다.
갈애[愛, 집착, 애욕]에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 무엇이 갈애(집착)의 인, 갈애(집착)의 연, 갈애(집착)를 속박시키는 자인가? 무명(無明)이 갈애(집착)의 인이며, 갈애(집착)의 연이며, 갈애(집착)를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이다.
무명(無明)에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 무엇이 무명의 인, 무명의 연, 무명을 속박시키는 자인가?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가 무명의 인이며, 무명의 연이며, 무명을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이다.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 8정도의 정사유의 반대)에도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으며 속박시키는 자[縛]가 있다. 무엇이 부정사유의 인, 부정사유의 연, 부정사유를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인가? 안식[眼]과 색경[色]을 인연[緣]하여 부정사유가 생기고 그 부정사유에서 생겨난 어리석음[癡]이 다시 부정사유의 인이며, 부정사유의 연이며, 부정사유를 [3계(三界)의 색경(色境)에] 속박시키는 자이다.
안식과 색경을 인연하여 부정사유를 일으키고 어리석음을 일으킬 때, 그 어리석음[癡]이 바로 곧 무명(無明)이다. 바로 이 어리석음을 바탕하여 구하고 원하는 것[求欲]을 갈애[愛, 집착, 애욕]라 하며, 갈애[愛, 집착, 애욕]에 바탕하여 짓는 것[所作]을 업(業, 즉 염오(染污)한 업)이라 한다.
이와 같이[如是], 비구들이여, 부정사유(不正思惟: 바르지 않은 사유, 바르지 않은 생각, 8정도의 정사유의 반대)는 무명(無明)을 원인[因]으로 하여 갈애[愛, 집착, 애욕]가 된다[不正思惟因無明為愛].
[이와 같이] 무명을 원인으로 하여 갈애(집착, 애욕)가 생기고[無明因愛], 갈애(집착, 애욕)를 원인으로 하여 업(業, 즉 염오(染污)한 업)이 생기고[愛因為業], 업(염오(染污)한 업)을 원인으로 하여 [갖가지로 오염된, 즉 갖가지 번뇌에 물든, 즉 3계의 색경에 속박된] 안식[眼]이 생긴다[業因為眼]. 이식[耳] · 비식[鼻] · 설식[舌] · 신식[身] · 의식[意]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일러 〈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緣 · 有縛法經]〉이라 한다.
— 《잡아합경》 제13권 제334경〈유인유연유박법경(有因有緣有縛法經)〉한글본
무명의 원인이 되는 부정사유(不正思惟)는 인지행동심리학(CBT)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무명(無明)이라고 말들 하는데, 무명이란 어떤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무명이라는 것은 과거[前際]에 대하여 앎이 없고[無知], 미래[後際]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과거[前際] · 미래[後際] · 현재[中際]에 대하여 앎이 없고(==>연기에 대한 앎), 불보(佛寶) · 법보(法寶) · 승보(僧寶) (==>3보에 대한 앎)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괴로움[苦] · 괴로움의 발생[集] · 괴로움의 소멸[滅]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사성제(四聖諦, 산스크리트어: चतुरार्यसत्यानि catvāri āryasatyāni, 영어: Four Noble Truths) 또는 사제(四諦)고집멸도의 앎)에 대하여 앎이 없고 선(善) · 불선(不善) · 무기(無記)에 대하여 앎이 없으며, 안[內]에 대해서도 앎이 없고 밖[外]에 대해서도 앎이 없으며, 혹은 이러저러한[彼彼] 일[事: 개개의 사물, 특히 앞에 나열한 이치들과 관련된 개개의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앎이 없고[無知] 어둡고[闇] 막히면[障],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어둠이 크게 쌓이고 모인 것[大闇積聚]이겠군요.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무명을 끊게 되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이른바 8정도(八正道)이니, 즉 바른 소견[正見]과……(내지)……바른 선정[正定]입니다.
— 《잡아함경》 제18권 제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 한글본
무명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란..
아마 아래 동영상에서 보이는 바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환희같은.. 미소와 같은 듯하다.
'HOW TO SEE'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 밞음을 전해주신 고대의 스승들과 오늘날의 스승님들과 여러 책과 저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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